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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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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575회 작성일 21-03-1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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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제주현장상담센터 해냄의 고혜령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글은 부설이동에 대한 소감문이 되어야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난 21일 제주여성자활지원센터에서 제주현장상담센터 해냄으로 부설을 옮기며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엔 제 생각이 여물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신 조금 더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추상적으로는 용기이고 구체적으로는 제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삶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굉장히 개인적인 글이 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글이 그렇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제가 뜬금없이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일상대화에서 많이 쓰이는 어휘는 아니지만 용기라는 것은 제 삶의 본질적인 축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핵심단어입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제 MBTI 유형을 먼저 소개해드리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MBTI 유형은 INFP-T입니다. 제가 갑자기 저의 MBTI 유형을 오픈 한 것은 MBTI가 제가 감정적인 면에서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 눈에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제가 하는 모든 용기 있는 결정은 굉장히 큰 감정적 희생을 요구합니다. 감정이 필요하지 않은 용기를 본적이 있나요?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잔잔한 물에 돌을 던지는 것이 용기이고,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는 것이 용기이기 때문이죠. 용기를 낼 때 그 사람은 감정적인 부담과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두 어깨에 지게 됩니다. 어떻게든지요.

 

저는 제가 한 용기 있는 결정들이 저 자신에게 매우 큰 스트레스를 가져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합니다. 저의 행동을 위해 저의 감정이라는 제물을 바치죠. 쉽지 않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제가 언제나 이랬을 까요? 답은 절.. N.O.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저는 잔다르크처럼 용기 있는 소녀였습니다. 남자친구들과 하는 달리기에서 항상 일등을 했고, 발표할 사람이 있냐고 선생님이 학우들에게 물어 볼 때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들었습니다. 단 한순간도요. 저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작은 전사였습니다.

 

너무 자주 발표를 해 선생님이 저를 지목해 주지 않을 때는 교탁 위로 올라가서 손을 들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자주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일화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용기는 저의 성장과 반비례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똑똑해지면 똑똑해질수록 저는 침묵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저에게 이야기 했죠. ‘혜령아 바보가 되어라라구요.

따지지 말 것, 말을 많이 하지 말 것.

 

그리고... 그냥 조용히 있을 것.

 

저는 그 말씀을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았습니다.

 

마치 그게 옳은 것처럼요.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압니다.

 

 

그 때는 몰랐죠. 나의 침묵이 나의 생명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휠체어에서 볼썽사납게 나가떨어져 도와달라고 악을 지르던 그 순간에도 몰랐습니다.

거의 대부분 침묵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인해 저 자신도 저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요. 저는 제가 제 두 발로 또는 두 팔로 휠체어에 다시 앉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죠.

저는 순종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그 대가로 저의 내면의 언어는 힘을 잃었고 불행해졌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은 나를 저주하고 남들을 미워하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어려운 길들을 돌고 돌아서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용기의 시작점이 세월호 사건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 했던 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배에 갇혀 죽고, 온 나라에는 통곡소리만 가득했죠. 그 모습은 마치 저의 내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시절 저는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마음 속 에서는 항상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죽어가는 것은 알았지만 왜 죽어가는지는 몰랐습니다. 그 시절엔 바스라지는 낙엽소리에도 총을 맞은 듯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 때, 내가 나 조차 사랑 할 수 없었던 그 시점에 난 참 이상한 용기를 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 후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저도 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한 용기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거의 하루 이틀 만에 제 진로를 파격적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매우 무모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었죠.

 

그 용기는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저를 사람답게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만약에 용기내지 않아도 괜찮았다면 용기내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내 삶을 나아지게 만들었다면요.

 

당연하게도 무관심과 침묵은 저의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산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요.

 

삶을 살며 종종 조그마한 용기를 냈을 때 저는 순간 감정적으로 매우 취약해졌지만 비로소 아주 조금씩 삶의 주도권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누가 뺏아간 것일까요. 저는 주도권을 아무에게도 넘겨줬던 것 같지 않은데요.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았던 주도권을 찾아가며 저는 비로소 작은 전사였던 어린 시절의 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 삶엔 아직도 가짜 껍데기들이 가득합니다. 대학 시절의 저를 아주 지워버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아마 영원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용기로 인해 저는 저를 사랑하게 되었고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용기를 냈을 때 항상 좋은 결과가 있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절대 그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없었겠죠. 그것이 저에게는 희망을 줍니다.

 

저는 약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약하기 때문에 강합니다. 제가 약하지 않았다면 약함에서 강해지는 법 또한 삶을 통해 체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하지 않았다면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가지면서 내뿜는 시너지 또한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여성들, 모든 약자들. 아무 말 하지 못하게 침묵을 강요당했던 모든 이들의 삶에 경의를 표합니다.

 

모든 약자들의 삶이 그들이 겪은 폭력으로 인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해괴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그 어떤 폭력도 인간성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겪어야만 했었던 폭력은 없으며 당신이 감내해야만 하는 폭력도 없습니다.

 

저는 제주여성인권연대의 일원이며 인권활동가이기 때문에 조금 더 용기를 낼 것입니다. 저를 바꿀 것이고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데 일조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내 이름을 걸고 선언하기에는 너무나 원대한 꿈 일수도 있으나 저는 한 번 더 용기를 냅니다.

 

꿈꾸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용기 있게 행동하는 활동가라는 이름에 누가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으면 용기를 내어 채찍질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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