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재판 모니터링단 활동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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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조회 664회 작성일 22-01-07 10:43본문
피해자에게 가까운 법정이 되길 바라며...
재판모니터링단 활동가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여성 폭력에 관심이 없었다. 경찰이 “왜 신고했냐”며 따졌던 일,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바로 문 앞에 있는데 동석을 거부당하고 일면식도 없는 상담사를 신뢰관계인으로 앉혔던 일, 사건 접수 후 몇 개월이 지나도 진행 여부를 알 수 없었던 일, 법원에 문의했더니 “당사자도 아니면서 전화한다”고 빈축 샀던 일.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답답함만 쌓여갔다.
피해자가 제일 화 나고 억울한 사람인데, 왜 당사자가 아닐까? 그들이 말하는 당사자가 아니라서, 왜 소외되고 배제되어야 할까? 혹시 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피해자가 쏙 빠져있는 절차가 이해되지 않았고, 그러한 의문은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내가 피해 상담을 공부하게 된 이유다.
그러던 중 범죄피해자를 위한 지원활동으로 재판 방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주에도 이런 활동을 하는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았다. 그게 바로 제주여성상담소의 재판 모니터링단 활동이었다.
방청객의 눈으로 바라본 법정은 이상했다. 피해자도 없고, 피해자 변호인도 없었다. 피해자에 대한 언급을 귀 기울여 듣고 기록하는 것은 우리뿐이었다. 피해자 측의 부재로 제대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없는 구조여서, 모니터링의 역할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마스크를 내린 분들을 본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잠깐 턱에 걸쳐놓고선 잊어버린 거다. 이때는 눈만 마주쳐도,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바로 쓴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법정에 없는 피해자까지 고려하여 재판을 진행한다는 건 분명 번거로운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물론 재판부도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가끔 잊어버리는 것 같다. ‘피고인이 어리기 때문에’, ‘피고인이 신체적·심리적으로 불편하기 때문에’, ‘다행히 피고인이 2차 가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등 양형 과정에서 유리하게 반영된 근거들은 재판부가 피고인의 처지를 최대한 배려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이러한 법정의 모습은 피해자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간격을 좁히는 역할을 모니터링이 하고 있다. 피해자 측에서 재판을 지켜보고, 법정 안에 있는 이들이 본인의 발언을 점검해볼 수 있도록 상기시켜주는 일 말이다. 피해자 없는 법정에서 “당신의 발언은 피해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반영하는 이 제도가 계속되었으면 한다. 항상 동행하며 곁에서 격려해주셨던 팀장님께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피해자에게 좀 더 가까운 법정이 되길 바래본다.